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04 대한민국 (문단 편집) ==== 3권 ==== 독일은 잠수함 [[U보트]]를 이용하여 무수히 많은 영국 군함들을 격침하여 연합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도 뮬러 함장이 지휘하는 순양함 엠덴호가 연합국 함정들을 나포, 격침하고 캘커타와 말레이시아를 타격하여 연합국의 군함과 유류고를 박살내는 성과를 거둔다. 영국은 동아프리카 식민지로부터 독일령 아프리카를 공격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시키고, 한국은 비밀리에 광무부대 1개 소대를 아프리카로 보내 독일을 지원한다. 인도원정군 1개 중대는 아무것도 모르고 독일령 마을을 공격했다가 광무부대에 패해 쫓겨난다. KKK단이 하와이 현지 한인들을 학살하자 한국은 임시 항공모함 3척, 순양함 6척, LPX 상륙함 3척 및 다수의 [[공기부양정]]을 동원하여 하와이 점령을 준비한다. 현지 해군 사령관 걸비스 준장은 협상에 나섰지만 한국은 선 점령 후 협상이라는 완강한 태도로 나섰다. 걸비스는 하와이의 지형을 믿고 항전에 나서지만 폭격기로 개조한 [[KT-1 웅비]]의 폭격에 포대들이 모두 박살나고 한국 해병 3연대가 공기부양정을 타고 상륙하면서 패배한다. 걸비스는 하나우마항으로 피신하여 하와이를 탈출하려고 했지만 하와이 원정군 사령관 홍지훈 소장이 탄 상륙지휘헬기에 의해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추태를 보이며 포로가 되었다. 하와이가 함락되자 윌슨은 전 대통령 태프트와 양당의 의원, 그리고 해군차관보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하와이로 보내 교섭에 나섰다. 그러나 윌슨은 회담보다 50만 대군을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화당에 회담을 떠넘겨버렸다. 한국 측에서는 권규 외무통상부 장관이 대표로 나왔는데 권규 장관은 미국의 하와이 점령의 부당성을 설파하며 역사적 연원을 근거로[* 알래스카는 원래 아시아 원주민의 땅이니 한국이 그들을 대신해 미국으로부터 아시아의 땅을 되찾으리라는 것.]원주민에게 땅을 돌려줄 테니 하와이는 물론 [[알래스카]]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알래스카에 뭍힌 자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미국은 720만 달러를 주고 알래스카를 한국에 팔아넘기며 KKK단 색출을 위해 한미 공동조사팀을 창설했다. 비밀리에 KKK단을 움직여 오재용 정권에 타격을 주려고 했던 한국당 이정우 총재는 오 수상이 위기를 이용해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얻어내자 속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독일 해외운용함대는 동아시아에서 출발해 페낭, 서사모아, 이스터섬을 거쳐 남아메리카까지 진군하며 연합국 항구를 모두 공격해 초토화시켰다. 특히 1914년 11월 1일 코로넬 해전에서 영국군 장갑순양함 2척을 격침시켜 함대 사령관 그라프 스페 제독의 자존심은 하늘 끝까지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그라프 스페 제독은 한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포클랜드 해전]]을 벌였다가 영국의 기만 전술에 낚여 성급하게 후퇴했고, 태세를 정비한 영국 함대의 맹공에 함대가 궤멸당한다. 독일의 유보트 공격에 시달리든 영국은 한국의 조언을 받아 해안에 어망과 기뢰를 살포하는 한편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의 주도 하에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공략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국과 독일이 오스만을 도와 [[다르다넬스 해협]] 방어에 나섰고, 영국은 함대를 동원하여 오스만군의 방어선에 큰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했지만 해협을 뚫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영국은 육군까지 동원하여 공세에 나섰지만 오스만과 독일은 한국에서 얻은 정보로 영국 해군의 포격이 멈출 시간을 정확히 쟀고, 시계가 늦어 제때 돌입하지 못한 안잭군을 기관총으로 학살했다. 연합국과 독일을 오가며 전쟁을 조종하는 한국은 의왕 이강과 치우조 요원 명진수를 이집트로 파견하여 아랍인을 선동하려고 한다. 그들은 영국군 중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와 만난 뒤 그를 밀어내고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데 소극적이던 아랍 부족들을 질타하여 그들이 한국과 손을 잡도록 만든다. 한국과 손을 잡은 아랍 부족들은 오스만군의 열차를 털어먹는가 하면 아카바를 공격한다.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끝없는 [[참호전]] 속에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독일은 [[비행선]] 재플린으로 영국을 폭격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영국군의 반격으로 재플린 1대를 잃었다. 그리고 연합군과 독일은 '메두사'라는 한국인으로부터 [[포스겐]] 독가스를 전달받는데,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처음으로 독가스를 써서 어느 정도 전과를 얻는 데 성공하지만 한국의 반발 때문에 더 이상 적극적으로 독가스를 쓰지 못한다. 그리고 유보트 함대는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배를 격침시켜 성과를 얻지만 독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 동부전선에서 독일은 승승장구하여 러시아를 폴란드 쪽으로 쫓아내고, 내친김에 아예 국경까지 밀어붙일 작정으로 전진했다. 러시아군은 전사자만 10만에 포로가 3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고 러시아는 혼란에 빠진다. 알렉산드라 황후는 군 총사령관 니콜라이 대공에게 패전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니콜라이 2세에게 직접 전투를 지휘하라고 조언했지만 내무장관 사핀은 국내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황제가 자리를 비우면 라스푸틴 같은 자들이 창궐할 거라고 반박했다. 황후와 내무장관이 언쟁을 벌이자 니콜라이 2세는 내무장관을 퇴실시키고 융희황제의 협조를 얻기 위해 신시를 방문하려 한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한창 벌어지던 1914년 5월 윌슨 대통령의 친구 알프레드 벤더빌드는 미국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루시타니아호가 독일군에게 공격받도록 연출하여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루시타니아호에는 갈리폴리 반도에서 철수한 한국 치우조 요원들이 타고 있었고 벤더빌드 일당이 꾸미는 음모는 모조리 도청당했다. 느리게 움직이는 루시타니아호를 발견한 유보트 U-20은 영국 어선이 던진 어망에 걸려 나포당하고, 벤더빌드는 예정되어있던 공격이 오지 않자 직접 배에 실은 폭약을 터트리려고 했지만 치우조 요원들에 의해 저지당한다. 치우조 요원들에게 잡힌 벤더빌드는 이번 음모에 미국 대통령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항변하며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전황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연합국과 독일은 이탈리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연합국은 [[쥐트티롤]], 달마티아, 이스트리아, 바로나를 주겠다고 제안했고 여기에 미국과 한국도 연합국 측에서 전쟁에 참여할 거라고 하자 이탈리아 총리 손니노는 연합국 편에 서서 참전한다.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하자 독일은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전 세계 식민지들에게 독일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연설에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독일의 식민지들에게 자치를 허용하며 중동의 영향력을 포기하고, 해외에 나가 있는 독일군도 전쟁이 끝나면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한국 융희황제는 다음 날 빌헬름 2세의 선택을 지지한다고 선언한다. 세계가 시끄러운 가운데 황국 역시 누구 편에 들어 참전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직례총독 풍국장을 따르는 직례파는 독일 편에 서서 참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총리 단기서가 이끄는 안휘파는 주변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황국은 연합국과 손을 잡아 한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포로에서 풀려나 다시 정계의 거물로 부상한 장작림은 전쟁보다 내정에 힘쓰라는 융희황제의 말을 상기하며 지금은 힘을 기를 때라고 주장했다. 논쟁이 끝나자 장작림은 참모가 된 호불청과 함께 휘하 세력인 봉천파를 움직이려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